목회 칼럼 · Column
A word for the week
목회 칼럼
짧고 깊은 묵상으로, 파편화된 삶을 하나님의 진리로 잇습니다. 읽고 싶은 글을 눌러보세요.
세계관
파편화된 세상, 통전적 진리로 잇다
삶을 조각내지 말고, 모든 영역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고백합니다.
소그룹
인도자는 곁에서 함께 걷는 동행자
앞에서 끌지 않고, 엠마오 길처럼 느린 걸음에 맞추어.
소그룹
삶의 나눔을 넘어, 말씀이 이끄는 소그룹으로
친교를 넘어 말씀 앞에 함께 서는 공동체로.
말씀 묵상
하나님 앞에서 변명이라는 짐을 내려놓으며
사울의 세 가지 변명을 거울삼아 정직한 순종으로.
교단 소식
2026년 올랜도 총회를 마치고 돌아와서
SBC·한인총회의 핵심 결의와 진리 수호의 다짐.
소그룹
정직한 고백이 공동체를 살립니다
불편함 없는 모임을 넘어, 고백이 흐르는 은혜의 자리로.
가정
거실로 찾아온 전쟁, 가정을 기도로 파수하십시오
미디어의 파도 앞에서 가정을 영적 요새로 세우기.
세계관
흔들리는 세상 속, 변하지 않는 진리의 닻을 내리며
탈진실 시대, 감정을 넘어선 진리의 기준 위에.
세계관
안개 낀 세상, 우리 집은 '진리의 등대'입니까?
안개를 없애기보다, 변하지 않는 빛을 비추는 가정.
교회 사역
보이지 않는 손길, 예배 경험 센터 이야기
예배는 누군가의 기도와 땀 속에서 이미 시작됩니다.
말씀 묵상
내 뜻대로 하는 것이 정말 자유일까요?
진리 안에 머물 때 누리는, 참된 자유의 역설.
세계관
파편화된 세상, 통전적 진리로 잇다
최근 콜슨 센터(Colson Center)가 전한 기독교 세계관의 핵심 메시지는 우리 시대의 가장 큰 아픔인 '파편화(Fragmentation)'를 짚어내고 있습니다. 오늘날 세상은 종교와 과학, 주일과 평일, 영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을 철저히 분리합니다. 신앙은 그저 마음의 위안을 주는 개인의 영역으로 밀어 넣고, 공적인 삶의 자리는 세속적인 가치관으로 가득 채우려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온 우주와 우리의 모든 일상이 하나님의 주권 아래에 있다고 선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단지 교회 안에서만 주님이 아니라, 우리가 발을 디디고 살아가는 모든 현실의 주님이십니다. 이 파편화된 세상 속에서 삶의 모든 영역을 하나님의 진리로 연결하기 위해 우리가 회복해야 할 영적 가치들을 나눕니다.
첫째, 신앙과 일상의 일치입니다. 예배당 문을 나서는 순간 세상의 방식대로 살아간다면, 우리는 파편화된 문화에 굴복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가정, 직장, 그리고 매일 마주하는 행정과 실무의 자리까지도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는 거룩한 처소가 되어야 합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주께 하듯 정직과 성실로 임할 때, 일상은 거룩한 예배가 됩니다.
둘째, 진리를 통전적으로 바라보는 눈입니다. 우리는 뉴스를 볼 때도, 책을 읽을 때도, 다음 세대를 교육할 때도 성경의 렌즈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의 지식과 성경의 진리를 분리하지 않고, 하나님의 창조 질서라는 하나의 큰 그림 속에서 세상을 분별하는 영적 시력을 길러야 합니다.
셋째, 사랑으로 하나 되게 하는 사명입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사람들을 편 가르고 분열시키지만, 복음은 막힌 담을 허물고 하나 되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소그룹 안에서 나의 연약함을 정직하게 고백하고 서로의 허물을 말씀으로 품어줄 때, 세상이 모르는 참된 공동체의 일치와 회복이 시작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삶을 조각내어 세상과 타협하지 마십시오. 이번 한 주간, 여러분이 서 있는 바로 그곳에서 "이 모든 것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라는 고백을 삶으로 증명해 내기를 바랍니다. 변하지 않는 통전적 진리 위에 굳건히 서서, 파편화된 세상을 치유하고 변혁시키는 복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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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그룹
인도자는 곁에서 함께 걷는 동행자입니다
셀 소그룹 인도자는 완성된 스승이 아니라, 예수님의 제자 길을 먼저 걷고 그 길로 다른 사람을 초대하는 사람입니다. 오래 인도했다고 해서 다 배운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더 깊이 복음 앞에 서야 하고, 훈련생보다 먼저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사울은 자기 성찰을 멈추며 하나님의 마음에서 멀어졌지만, 다윗은 실패 속에서도 하나님 앞에 자신을 드러내며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러므로 인도자는 해마다 자신을 훈련생의 자리로 내려놓고, 교만과 자기의, 익숙함과 형식주의를 살피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또한 인도자는 앞에서 끌고 가는 사람이 아니라 곁에서 함께 걷는 사람입니다. 엠마오 길에서 예수님께서 낙심한 제자들의 속도에 맞추어 걸으셨듯이, 인도자도 함께 하는 셀원의 연약함과 느린 변화까지 품고 기다려야 합니다. 셀 소그룹은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과정이 아니라, 복음을 삶으로 배우고 체험하는 자리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살아라"는 지시보다 "나도 이렇게 살기 위해 씨름하고 있다"는 고백이 더 깊은 울림을 줍니다. 삶으로 보여 주는 복음은 어떤 설명보다 강한 설득력을 가집니다.
무엇보다 셀 소그룹은 프로그램이 아니라 한 영혼을 품는 사역입니다. 셀원들을 수료자나 결과물로 보지 않고, 함께 울고 웃으며 기다려야 합니다. 베드로의 실패를 아시면서도 그의 믿음을 위해 기도하신 주님처럼, 인도자는 정죄보다 중보를, 조급함보다 사랑의 인내를 선택해야 합니다. 참된 인도자는 화려한 리더가 아니라, 날마다 복음 앞에 낮아지고 셀원들과 함께 십자가 앞으로 나아가는 동행자입니다. 그런 인도자를 통해 소그룹은 과정이 아니라, 사람이 복음으로 새로워지는 은혜의 현장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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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그룹
삶의 나눔을 넘어, 말씀이 이끄는 소그룹(셀)으로
우리 교회의 소그룹 모임이 사랑과 은혜 가운데 진행되고 있음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모임 안에서 직장, 자녀, 인간관계 등 삶의 애환을 허심탄회하게 나누는 친교와 공감의 시간은 참으로 귀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모임이 단순한 친목과 위로에만 머문다면, 더 깊은 영적 성숙으로 나아가기는 어렵습니다. 진정으로 생명력 있는 영적 공동체는 삶의 나눔을 넘어 '말씀 앞에 함께 서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의 소그룹을 말씀 중심의 은혜로운 자리로 세울 수 있을까요?
- 말씀을 관찰할 명확한 방향을 제시하십시오: 성경을 읽기 전,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어떤 분으로 표현되는지 찾아봅시다"처럼 구체적인 초점을 일러주십시오. 명확한 가이드가 주어질 때 성도들은 더욱 능동적으로 진리의 보화를 발견하게 됩니다.
- 말씀을 소화할 수 있는 침묵을 기다려 주십시오: 성경을 읽은 직후 찾아오는 침묵을 두려워하거나 서둘러 채우려 하지 마십시오. 그 고요함은 모임이 정체된 것이 아니라, 말씀이 성도들의 마음 깊은 곳에 머무는 거룩한 시간입니다. 성령께서 일하시도록 충분히 묵상할 여백을 허락해 주십시오.
- 삶의 이야기를 다시 말씀으로 연결해 주십시오: 지체들이 삶을 나눌 때 따뜻하게 격려하고 반응해 주십시오. 그리고 그 고백이 "오늘 본문의 어느 구절과 연결해 볼 수 있을까요?"라고 부드럽게 질문하며 대화의 중심을 잡아 주십시오. 건강한 소그룹은 삶을 나누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삶을 말씀으로 해석해 내는 공동체입니다.
- 정답을 주는 대신 말씀 앞으로 이끌어 주십시오: 인도자가 모든 정답을 줘야 한다는 부담을 내려놓으십시오. 소그룹은 강의를 듣는 자리가 아닙니다. 훌륭한 인도자는 말을 가장 많이 하는 사람이 아니라, 가장 잘 들으며 공동체의 시선을 끊임없이 진리의 말씀으로 향하게 돕는 안내자입니다.
우리의 모든 소그룹이 나의 연약한 삶의 이야기로 시작하여, 하나님의 위대한 은혜의 이야기로 완성되는 복된 자리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모일 때마다 진리가 살아 숨 쉬는 풍성한 공동체를 함께 세워갑시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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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묵상
하나님 앞에서 변명이라는 짐을 내려놓으며
우리는 때때로 불편한 진실을 직면하기보다 그것을 외면하고 포장하는 데 익숙해지곤 합니다. 사무엘상 15장에 등장하는 사울 왕 역시, 불순종의 죄를 회개하기보다 세 가지 방식으로 진실을 억누르며 자신을 변명했습니다. 오늘 그의 모습을 거울삼아 우리의 중심을 돌아보기를 원합니다.
첫째, 책임을 타인에게 돌리는 태도입니다. 사무엘의 책망에 사울은 "무리가 아말렉 사람에게서 끌어온 것"이라며 백성에게 책임을 전가합니다. 우리 역시 연약함을 인정하기보다 환경이나 타인을 탓하며 마음의 짐을 덜어내려 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누구도 자신의 책임을 남에게 넘길 수 없습니다.
둘째, 선한 의도로 불순종을 덮으려는 태도입니다. 사울은 불순종의 결과물인 가축을 "여호와께 제사하려고 남겼다"고 항변합니다. 봉사나 헌신 같은 명분을 내세워 내면의 불순종을 희석하려 한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명분도 말씀에 대한 순종을 상쇄할 수는 없습니다. 주님은 외적인 열심보다 온전히 순종하는 중심을 기뻐하십니다.
셋째, 자신의 죄를 축소하고 합리화하는 태도입니다. 사울은 "나는 실로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였다"고 주장합니다. 대부분 순종했으니 작은 불순종쯤은 괜찮다고 여긴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타인과 비교하며 내 죄는 가볍다고 스스로 안심하지만, 하나님은 타협 없는 온전한 순종을 원하십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는 사무엘의 엄중한 선포를 기억합시다. 하나님은 우리의 화려한 변명이 아니라 진실한 중심을 보시는 분입니다. 직분과 헌신으로 자신을 포장하던 연약함을 십자가 앞에 내려놓으십시오. 정직한 회개와 말씀에 대한 온전한 순종으로 주님 앞에 나아가는 복된 한 주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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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 소식
2026년 올랜도 총회를 은혜 가운데 마치고 돌아와서
지난 주간 플로리다 올랜도에서 열린 미 남침례회(SBC) 정기총회와 한인총회 일정을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잘 마치고 안전하게 돌아왔습니다. 제가 자리를 비운 동안 기도로 동역해 주시고 교회를 든든히 지켜주신 성도님들께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올해 총회는 교단 내에 의미 있는 지각변동과 중요한 결단들이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우리 성도님들께서도 교단의 흐름을 이해하기 위해 꼭 알아두셔야 할 핵심 이슈와 결과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성경적 진리 수호와 보수적 신앙의 재확인입니다. 이번 총회에서 가장 큰 화두는 '여성 목사 안수 및 주일 예배 설교를 금지하는 헌법 개정안(Truth and Unity Amendment)'이었습니다. 이 안건은 74%라는 압도적인 지지로 통과되었습니다. 이는 세속적인 시대 흐름에 타협하지 않고, 성경의 권위에 온전히 순종하려는 교단의 강력한 의지가 반영된 지각변동입니다. 또한, 교단의 보수적 쇄신과 갱신을 강조해 온 윌리 라이스(Willy Rice) 목사님이 새 총회장으로 선출되어 진리 수호에 더욱 힘이 실리게 되었습니다.
둘째, 예배의 본질과 생명의 가치 강조입니다. 조력 자살(안락사) 반대, 반유대주의 규탄, 장애인 사역 확대, 정치적 폭력 배격 등 8개의 중요한 결의안이 채택되었습니다. 특히 눈여겨볼 점은 "디지털 기술은 복음을 전하는 도구일 뿐, 성도의 물리적 모임과 대면 예배를 결코 대체할 수 없다"는 결의안입니다. 온라인 편의주의가 만연한 시대에도 모이는 지역 교회의 본질적인 가치를 굳게 다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한인총회의 연합과 다짐입니다. 함께 열린 한인총회에서는 다가오는 미 건국 250주년을 맞아 우리에게 허락된 신앙의 자유에 깊이 감사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나아가 한인 교회들이 굳건히 연합하여 다음 세대에게 변질되지 않은 복음을 전수하고, 영혼을 구원하는 대위임령 성취에 헌신할 것을 뜨겁게 결의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세상의 가치관이 흔들리는 시대 속에서도 우리 교단이 말씀의 반석 위에 굳게 서려는 모습을 보며 큰 도전을 받았습니다. 우리 교회도 시대의 조류에 휩쓸리지 않고, 예배의 기쁨을 회복하며 복음의 본질에 더욱 집중해야 할 때입니다. 앞으로도 변함없는 진리 안에서 든든히 세워져 가는 우리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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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그룹
정직한 고백이 공동체를 살립니다
우리는 흔히 갈등 없고 분위기 좋은 소그룹을 이상적으로 여깁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불편함 없는 모임'을 유지하려다 보면 삶의 진정한 변화는 더디게 나타납니다. 그 모임에 정직한 '고백'이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고백이 없는 모임은 자칫 체면과 비교의 공간이 되기 쉽습니다. 하지만 용기를 내어 연약함을 고백하는 순간, 소그룹은 복음 앞에서 평등해지며 서로를 판단하지 않는 진정한 은혜의 자리가 됩니다.
첫째, 고백은 관계를 근본적으로 바꿉니다. 모두가 '괜찮은 신앙인'이라는 가면을 내려놓을 때 끈끈한 연대가 시작됩니다. 특히 리더가 먼저 연약함을 나누며 은혜를 구할 때, 닫혀 있던 마음의 문들이 열립니다.
둘째, 고백은 기도의 깊이를 바꿉니다. "잘 지내게 해달라"는 막연한 나눔이 아니라, 일상의 상처와 열등감이 구체적으로 드러날 때 기도는 강력해집니다. 고백 위에 드려지는 기도는 모임의 가장 깊은 영적 호흡이 됩니다.
셋째, 고백은 삶을 변화시키는 영적 훈련입니다. 성경은 자백을 영적 성장의 핵심으로 제시합니다(요일 1:9). 고백은 단순한 감정 공유를 넘어 회개와 성령의 도우심으로 이어집니다. 모임의 목적은 지식 축적이 아니라 실질적인 삶의 변화에 있기 때문입니다.
개인주의가 만연한 시대에, 공동체는 서로의 허물을 품고 그리스도께로 나아가는 피난처가 되어야 합니다. 고백이 있는 모임은 때론 불편할 수 있으나, 그곳에 은혜가 흐르고 영혼이 살아납니다. 우리가 속한 공동체가 겉모습만 화려한 모임을 넘어, 정직한 고백을 통해 진정으로 건강하고 성숙하게 세워지기를 축복합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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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
거실로 찾아온 전쟁, 가정을 기도로 파수하십시오
오늘날 사탄이 교회를 무너뜨리기 위해 사용하는 가장 강력하고도 은밀한 전략은 바로 '가정의 해체'입니다. 과거에는 세속적인 가치관과 영적 전쟁의 최전선이 지혜로운 분별력을 요구하는 외부의 영역에 있었다면, 이제는 미디어와 스마트폰, OTT 플랫폼을 타고 우리의 안방과 거실 깊숙한 곳까지 무차별적으로 침투해 오고 있습니다.
콜슨 센터의 세계관 통찰에 따르면, 현대 문화는 끊임없이 우리의 자녀들에게 "너희 부모의 신앙은 낡은 것이며, 성경의 기준은 너희의 자유를 억압하는 틀에 불과하다"고 속삭입니다. 거룩한 창조의 질서를 깨뜨리고, 절대적인 진리를 상대화하려는 세속화의 파도가 매일 밤 우리의 가정 안에서 소리 없이 침윤해 들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 치열한 영적 전쟁터에서 우리의 가정과 다음 세대를 믿음으로 파수하기 위해, 이번 한 주간 세 가지 결단으로 나아가기를 소망합니다.
- 영적 방어벽을 높이십시오: 가정은 단순히 먹고 자는 휴식의 공간을 넘어, 영적인 요새가 되어야 합니다. 무분별하게 흘러 들어오는 미디어와 세상의 메시지를 필터링하고, 성경적 가치관으로 거실의 문화를 통제하는 영적 권세를 회복하십시오.
- 신앙 전수의 자리를 사수하십시오: 다음 세대에게 신앙을 전수하는 일은 교회의 프로그램에만 맡겨둘 수 없습니다. 가정 예배를 회복하고, 식탁 평상시의 대화 속에서 하나님의 행하심을 나누며, 부모가 먼저 말씀대로 살아가는 신실한 예배자의 본을 보여야 합니다.
- 무릎으로 자녀를 위해 싸우십시오: 세상의 유혹이 아무리 거세고 교묘할지라도, 눈물로 침상을 적시는 부모의 기도보다 강할 수는 없습니다. 자녀들의 눈과 귀, 그리고 마음을 세상의 거짓으로부터 보호해 주시도록 매일 새벽과 밤마다 무릎으로 주님 앞에 나아가십시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가정은 하나님의 거룩한 교회가 시작되는 출발점이자, 세상의 거친 파도를 막아내는 반석입니다. 이번 한 주간, 거실로 찾아온 영적 전쟁을 외면하지 마시고, 기도의 방패와 말씀의 검을 들어 여러분의 가정을 신실하게 지켜내시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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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관
흔들리는 세상 속, 변하지 않는 진리의 닻을 내리며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이른바 '탈진실(Post-Truth)'의 시대입니다. 문화와 미디어는 "절대적인 진리는 없으며, 각자의 감정과 경험이 곧 진리"라고 끊임없이 속삭입니다. 객관적 사실보다는 개인의 주관적 신념이 우대받고, 하나님의 창조 질서마저 상대적인 개념으로 치부되는 거센 세속화의 파도 한가운데 우리가 서 있습니다.
하지만 기독교 세계관은 단호하게 선포합니다. 진리는 우리가 발명하거나 느끼는 것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발견'되어야 할 영원한 실체입니다. 기독교는 단순히 종교적 위안을 주는 개인적 취향이 아니라, 온 우주와 생명의 본질을 설명하는 "모든 현실에 대한 진리(Truth about all reality)"입니다.
우리가 세상의 거친 파도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이번 한 주간 마음에 새겨야 할 세 가지 영적 지침은 다음과 같습니다.
- 감정을 넘어선 진리의 기준 확립: 내 안의 요동치는 감정이나 세상의 다수결이 삶의 나침반이 될 수 없습니다. 오직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만이 우리의 유일한 도덕적, 영적 기준임을 매일 고백해야 합니다.
- 세계관의 분별력 훈련: 우리가 매일 접하는 뉴스, 미디어, 문화 속에는 세속적인 가치관이 교묘하게 숨어 있습니다. 성경의 렌즈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거짓된 메시지를 분별해 내는 영적 시력을 길러야 합니다.
- 사랑 안에서 진리 말하기: 진리를 수호한다는 것은 세상을 향해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진리를 잃고 방황하는 영혼들을 향해, 그리스도의 긍휼을 품고 진리를 담대히 선포하는 거룩한 사명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흔들리는 세상 속에서 결코 흔들리지 않는 십자가의 반석 위에 영혼의 닻을 깊이 내리십시오. 우리의 삶 전체가 세상 사람들에게 '진리가 살아있음'을 보여주는 확실한 증거가 되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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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관
안개 낀 세상, 우리 집은 '진리의 등대'입니까?
성도 여러분, 주님의 이름으로 문안드립니다. 세상이 참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정보와 다양한 목소리가 쏟아지는 이 시대 속에서, 성경적 세계관으로 시대의 흐름을 분별하도록 돕는 기독교 연구 기관인 '콜슨 센터(Colson Center)'는 최근 우리가 마주한 현실을 '문화적 안개가 짙게 낀 상태'로 비유했습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무엇이 참된 가치인지 분별하기 어려울 만큼 세상의 기준이 희미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자라나는 다음 세대에게 이 안개는 더욱 위협적으로 다가옵니다.
이러한 시대에 우리 그리스도인의 가정과 공동체는 단순히 세상을 피하는 도피처가 아니라, '진리의 등대'가 되어야 합니다. 등대의 역할은 안개를 단번에 없애는 것이 아닙니다. 안개 속에서도 배들이 길을 잃고 암초에 부딪히지 않도록, 변하지 않는 빛을 비추어 안전한 길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편 119:105).
진리의 빛을 비추는 일은 거창한 구호에 있지 않습니다. 식탁에 둘러앉아 하나님의 선하심을 이야기하고, 일터에서 정직을 선택하며, 세상의 유혹 앞에서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바로 가장 강력한 빛입니다. 세상이 "진리는 각자의 마음에 달린 것"이라고 속삭일 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만이 영원한 기준"임을 삶으로 증명해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이번 한 주간 여러분의 삶의 자리를 기도로 다시 한번 점검해 보시길 권합니다. 세상의 거센 파도와 짙은 안개 속에서도 우리 자녀들이, 그리고 방황하는 이웃들이 여러분의 모습을 보고 생명의 길을 찾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세상은 점점 어두워져도, 주님의 진리를 품은 여러분의 빛은 결코 꺼지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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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사역
보이지 않는 손길, 예배 경험 센터 이야기
지난 주일 청지기 모임에서 올해 사역 조직이 새롭게 개편되었다는 소식을 나누었습니다. 짧은 시간이라 다 전하지 못한 마음이 있어, 앞으로 세 주에 걸쳐 각 센터별로 조금 더 깊이 나누려 합니다. 오늘은 첫 번째, '예배 경험 센터' 이야기입니다.
매주일 예배당에 들어서면서 우리가 가장 먼저 만나는 것은 무엇일까요? 환하게 맞아주는 인사, 정갈하게 놓인 의자, 그리고 첫 찬양이 울려 퍼지는 순간—이 모든 것 뒤에는 보이지 않는 손길이 있습니다. 우리가 '예배드린다'고 말할 때, 그 예배는 사실 누군가의 기도와 땀 속에서 이미 시작된 것입니다.
올해 김등수 코디네이터를 중심으로, 이진실 리더가 이끄는 찬양·미디어팀이 매주 악보를 고르고 영상을 점검하며, 우리 입술의 고백이 한목소리가 되도록 함께 연습합니다. 박정심 리더가 이끄는 환대·환경팀은 예배당 문을 열고, 꽃을 놓고, 성찬상을 차리며, 처음 오신 분이 '다시 오고 싶다'고 느끼도록 작은 것 하나까지 정성을 기울입니다.
그동안 찬양과 환경 사역은 각각 따로 움직여왔습니다. 그러나 올해는 다릅니다. 찬양의 흐름과 공간의 분위기가 하나의 이야기처럼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두 팀이 함께 머리를 맞대기로 했습니다. 예배 시작 전 조용한 음악이 흐르는 그 순간부터, 마지막 축도 후 서로의 안부를 묻는 그 시간까지, 모든 순간이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하나의 여정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성도 여러분, 이분들의 섬김 위에 기도를 얹어주십시오. 찬양이 울릴 때 함께 마음을 모아주시고, 예배 후 자리를 정리하는 작은 손길에도 동참해 주십시오. 예배를 '받는 사람'이 아니라 '함께 드리는 사람'이 될 때, 이 작은 예배당에 하나님의 임재는 더욱 깊고 풍성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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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묵상
내 뜻대로 하는 것이 정말 자유일까요?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자유'를 최고의 가치로 여깁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네 마음이 원하는 대로 해라", "네가 느끼는 대로 사는 것이 진정한 자유다"라고 끊임없이 속삭입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자기 마음대로 살면 살수록 사람들은 더 공허해지고, 중독과 불안이라는 보이지 않는 감옥에 갇히곤 합니다.
최근 콜슨 센터(Colson Center)는 현대인이 오해하고 있는 '자유'에 대해 깊은 통찰을 전했습니다. 세상이 말하는 자유는 '내 욕망을 방해받지 않는 것'이지만, 성경이 말하는 진정한 자유는 '하나님이 설계하신 목적대로 살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한복음 8:32)고 말씀하셨습니다. 물고기가 물속에 있을 때 가장 자유롭고, 기차가 선로 위를 달릴 때 가장 자유롭듯이, 인간은 창조주 하나님의 질서 안에 머물 때 가장 안전하고 자유롭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자기 부인'에서 시작됩니다. 내 욕망과 고집을 내려놓고 주님의 뜻에 순종할 때, 우리는 비로소 죄의 속박에서 벗어나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평강을 누리게 됩니다. '내 마음대로' 사는 삶이 아니라 '주의 말씀대로' 사는 삶이 우리를 가장 행복하게 합니다.
이번 한 주간, 세상의 유혹 앞에서 잠시 멈추어 서서 질문해 보시길 권합니다. "지금 나는 내 욕망을 따르고 있는가, 아니면 진리를 따르고 있는가?" 주님의 법 안에서 진정한 자유를 만끽하시는 은혜로운 한 주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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