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uth & Grace필라한인침례교회
목회 칼럼 · Column

당연해진 사랑의 뿌리

2026. 8. 19 · 필라한인침례교회

그리스도인은 위선자라는 말을 종종 듣습니다. 억울하지만 아주 틀린 말도 아닙니다. 성경 자체가 우리를 그렇게 진단하니까요. 그런데 그 비난 앞에 주저앉기 전에, 한 번 물어보면 좋겠습니다. “가난한 사람은 도와야 한다”는 그 당연한 생각은 대체 어디서 왔을까요.

역사가들이 그려 보이는 고대 그리스·로마 세계는 우리 상상과 많이 다릅니다.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밟는 일이 자연스러웠고, 가난은 돌봄이 아니라 경멸의 대상이었으며, 약하게 태어난 아이는 성 밖에 버려졌습니다. 베풂조차 베푸는 자의 이름을 높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 단단한 세계를 뒤집은 것은 근사한 논쟁이 아니라, 사람의 존엄을 믿고 그대로 살아낸 이름 없는 그리스도인들이었습니다.

최근 한 무신론 학자조차 자기 책에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병원과 고아원과 구호 단체가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있겠느냐고, 적어도 이 점에서는 기독교에 감사한다고 말입니다. 재작년 허리케인이 산간 마을들을 무너뜨렸을 때, 가장 먼저 달려와 가장 늦게까지 남아 낯선 이의 집을 다시 지어 준 이들도 신앙 공동체였습니다. 실제로 조사를 해 보면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이웃보다 훨씬 더 자주 시간을 내고 지갑을 엽니다. 다만 요란하지 않아 잘 보이지 않을 뿐입니다.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요일 4:19). 우리가 선해서 사랑한 것이 아닙니다. 먼저 사랑받았기에 흘려보낸 것뿐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예수님이 세우신 과녁에 한참 미치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제 세상은 도울지 말지를 다투지 않고 어떻게 도울지를 다툽니다. 그 물음 자체가 복음이 지나간 자리에 남은 흔적입니다. 이번 한 주, 억울한 소리를 듣거든 변명을 찾기보다 조용히 한 사람을 섬겨 봅시다. 오늘의 작은 섬김이 다음 세대의 ‘당연함’이 됩니다.

이 칼럼은 콜슨 센터 BreakPoint의 “The Enduring Myth of Christianity’s Greed”(2026. 8. 19)가 던진 질문을 우리 교회의 언어로 다시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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